고양이를 잃다
고양이를 잃다. 상실감
작년 6월 11일. 그날만은 정확히 기억한다. 이삿짐을 나르는 짐차 옆 골목에서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태어난지 보름도 되지 않아 보인다. 갓 젓을 뗀 것인지 아니면 아직 떼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결막염에 걸린 눈을 치료하기 위해 안약을 바르고, 물티슈로 털을 닦았다. 그렇게 냥이와 동거는 시작되었다. 이름은 뭉이로 짓기로 했다. 뭉이와의 인연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뭉이와 만나기 일주일 전부터 새끼 고양이가 계속해서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밖에 나오니 골목 안쪽에서 울고 있는 뭉이를 발견했다. 집으로 데려와 박스에 넣었다. 먹을 것이 없어 마트로 달려가 고양이 우유와 새끼 사료를 사왔다. 작은 밥-물통, 작은 화장실과 모래까지 갑자기 10만 원 가까이 나갔다. 하지만 살리고 싶었다.
배가 고팠던지 아작 아작 잘 먹는다. 우유도 먹었지만 사료도 잘 먹었다. 이후로는 우유는 사지 않고 사료만 주었다. 생각 외로 아이는 잘 먹다 잘 잤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막염도 나아지고, 윤기도 나기 시작했다. 뜻밖의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


지독한 고독이 밀려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밝은 햇살이 밀려왔다. 뽀송한 솜털, 젤리 발바닥, 앵앵거리는 울음소리. 때로는 잠을 깨는 짜증 섞인 울음소리. 하지만 귀엽기만 하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밥을 챙겨준다. 그럼 아작아작 씹어 먹고 금새 잠이 든다. 그렇게 서너달이 지났다.
고양이는 생각보다 빨리 큰다. 석달 정도가 되었을 때 완전한 성묘는 아니었지만 새끼 같지 않은 새끼였다. 뭉이는 나의 껌딱지가 되었다.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책상에서 작업을 할 때 항상 곁에 있었다. 자고 있는 뭉이를 보면 가슴이 몽글몽글하다. 핏기가 감동은 코끝과 젤리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그렇게 잘 지냈다면 좋았을 텐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길고양이 인 것을 아는지 주변에서 들러오는 다른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당에 나가 놀아주다 고양이 소리가 들려오면 갑자기 귀를 쫑긋거리며 들었다.
어떤 날은 마당에서 놀다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가보니 저 멀리서 뭉이 어미가 뭉이를 보고 있었다. 뭉이의 엄마도 아빠도 뭉이와 겉의 흡사하다. 아마도 뒷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아닌가 싶다. 후에 알게 된 것은 그냥 길고양이였다. 뒷집에서 잘 챙겨주니 그곳에 자주 드나들었던 것이다. 뭉이를 만나기 한 주 전에 뒷집에서 들렸던 뭉이 울음 소리가 났던 이유이기도 하다.

석달, 넉달이 지나면서 발육상태가 좋았던 뭉이는 날렵했고, 점프력도 상당했다. 그리고 어느 날 마당에서 놀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집으로 들어왔다. 그때서야 뭉이가 독립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는 태어난지 6개월 정도가 되면 독립하게 된다.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어 문에 칸막이를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뭉이의 점프력은 생각보다 좋았다. 더 높였다. 더 높이 뛰었다.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러자 뭉이는 미친듯이 울기 시작했다. 결정을 해야했다.
결국 한달여간의 실랑이 끝에 자유를 주기로 했다. 길고양이였던 뭉이, 뭉이를 발견하고 끊임없이 뭉이를 불러내는 뭉이의 부모들. 결국 내가 항복한 것이다. 문을 열어 두었다. 언제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그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겨울에 현관문을 열어두니 정말 추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닐 간이문을 설치 바람이라도 막으려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간은 흐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봄이 지나 또 여름이 되었다. 뭉이가 들어온지 1년이 되었을 때 맛있는 간식을 사서 뭉이에게 주었다. 생일잔치인 셈이다. 영역이 싸움이 시작된 걸 알았다. 한 번 가면 며칠을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다리를 크게 다쳐들어왔다. 병원에 갔으니 큰 이상은 없어 며칠 동안 집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괜찮아지면 또 나갔다. 어떤 날은 몸과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들어왔다. 영역다툼에서 진 것을 분명하다. 길고양이는 어쩔 수 없는 걸까?

지난 주, 유난히 다리를 절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며칠 아프다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날 이상하게 더 절었다. 유심히 봤던 아픈 다리에서 진물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원에 예약을 했다. 다음 날 오후 5시 비어 있어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 캐리어에 뭉이를 넣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 입구, 캐리어를 들고 병원을 들어가려는 찰나 뭉이가 미친듯이 날뛰더니 캐리어 뚜껑이 튕겨 나가면서 뭉이가 잽싸게 도망가 버렸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곧바로 뒷따라 갔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주차장 뒷편 길로 쌩하니 도망가 버렸다. 그렇게 뭉이를 잃고 말았다. 몇 시간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찾고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리고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당근에도 올리고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고양을 보았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고양이를 찾으면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뭉이를 찾으러 골목골목을 다니니 고양이를 찾는다는 포스터가 의외로 많았다. 나만 잃어 버린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잃어 버린다고 한다. 그곳은 동물병원 앞이라 더 많을지도 모른다.
뭉이는 길고양이 태생이다. 아니 중간에도 길고양이처럼 살았다. 누군가는 그러한 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사명은 거기까지라 생각한다. 집고양이와 길고양이의 그 어느 중간 지점. 문은 닫지 않았다. 지금도 문은 열어 두었다. 병원과 집까지의 거리는 900m 정도이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다. 난 뭉이가 집을 찾아 올 것이라 믿는다.
매일 점심을 먹고 뭉이를 찾으러 나간다. 다시 밤이 되면 그곳으로 간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고 밤에 주로 활동한다. 사람이 많은 낮보다는 밤에 나오기가 쉽기 때문이다. 오늘도 또 가려고 한다. 그렇게 찾다보면 내 목소리를 듣고 어디에 숨어 있다 나오지 않을까?
뭉이를 잃은 뒤 집은 더 적막해졌다. 두 아이들도 나가고 나 홀로 남은 집에 유일한 생명체였는데. 애인이자 친구였던 사랑스러운 뭉이. 이틀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고, 새로운 사료를 밥통에 넣어 준다. 사료는 먹지 않은 체로 그대로 버려진다. 참 쓸쓸한 날들의 연속이다. 부디 건강하게 돌아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