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다. 혼자이기는

 

고독과 글쓰기

처음이다. 혼자이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혼자는 아니었다. 혼자라고 말한 건 혼자 있었던 것이지 혼자 산 것은 아니었다. 늘 누군가와 같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산다. 쉰이 넘어 홀로 있으려니 이것 참 난처하다. 익숙해 져야 겠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늘 같이 있는 것이 습관이 된 탓일까?

태어나면 당연히 혼자가 아니다. 당연히 엄마가 있을 것이고, 운이 좋으면 아빠 형 동생 등 다른 가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어떤 가족도 없을 수 있다. 부부가 살 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보다 일찌 남편이 죽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몸이 약했던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럼 그는 정말 태어나자마자 혼자인 것이다. 만나기 쉽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아니었다.

5살이 즈음에 세 살 많은 누나가 죽었다. 물론 나는 기억이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족들은 2년 전에 연로하여 돌아가신 부모님 외에는 모두 살아 있다. 자라며 형제들이 있었고,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이 생겼다. 성인이 되어 도시로 갔다. 하숙하면서 혼자였지만 같이 있었다. 그때 정말 혼자였다면 지금처럼 쓸쓸할까?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서른에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15년을 살았다. 아프게 아내는 암으로 먼저 하늘로 갔다. 그리고 다시 나 혼자. 하지만 두 아이가 있었고, 함께 살아왔다. 지금은 어떤가? 한 아이는 두 달 전에 혼자 살고 싶다면 집을 나갔다. 둘째도 누군가와 같이 산다면 집을 나갔다. 이젠 정말 혼자다.

방 2개. 셋이서 살 때 참 좁았다. 아이들에게 두 방을 하나씩 주고 난 거실에서 생활했다. 마땅히 짐을 넣어둘 때가 없어 쌓고 올려 좁은 공간에서 비집고 살았다. 하지만 두 아들이 떠난 지금 그 좁던 집이 너무나 넓어 무섭게 느껴진다.

옆집에 팔순을 갓 넘은 할매가 산다. 새벽부터 TV를 크게 틀어 놓고 시끄럽게 한다. 거의 매일 소음에 시달린다. 문을 닫고 사는 겨울은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지만 봄이 되면서 서로 창문을 열기 시작하면 정말 시끄럽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 할매의 TV 소리는 공해다.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참는다. 그냥.

우연히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어 TV 소리에 대해 물었다. 자주 보냐고. 왜 크게 틀어 놓느냐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짧고 간단하게 물었던 질문은 한 시간이 넘는 기나긴 답변이 되어 돌아왔다. 그 할매는 이곳에 거주하게 된 긴 배경을 자조적인 말로 설명했다.

정리하면 간단했다. 외롭단다. 서럽단다. 눈물 나도록 마음이 아프 단다.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외롭고 힘들어 집에 들어가면 항상 TV를 켜 놓는다고 한다. 보든 안 보든. 저녁이든 새벽이든. 항상. 그래서 항상 시끄러웠던 것이다. 정중하게 소리를 줄려 달라고 부탁했다.

“시끄럽든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TV 소리는 현저히 줄었고, 들리는 시간도 굉장히 짧아졌다.

고독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핑계였다. 아무도 곁에 없으니 고독이 공포가 되었다. 무섭고 쓸쓸하고 서럽다. 모두가 떠난 집에 홀로 있으려니 마음이 춥다. 삼일 전 기르던 고양이까지 잃어 버리고 집은 정말 무덤처럼 되었다.

고독하니 글을 쓴다. 볕이 길어져 겨우 한 뼘이던 빛이 열 뼘이 넘게 거실로 들어온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빛은 강렬하고 공기는 맑다. 습하던 공기는 투명한 빛이 되어 선선한 바람과 함께 불어 온다. 바람조차 쓸쓸하다. 혼자 있으니.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다. 죽음조차도. 가을이 깊어 간다. 내일 추석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홀로 며칠간 여행을 다녀올까? 아니면 실컷 울어버릴까? 난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고독한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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