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
제목이 너무 거창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찾고자 스스로 던진 질문이다. 왜 굳이 ‘독서’라 하지 않고 ‘책을 읽다’로 표현했을까? 독서가 한자라서 그럴까? 아니다. 좀더 풀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은 책 속의 글자를 읽는 것을 너머서는 일이다. 급속하게 디지털화되는 시대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오감으로 지식을 체득하고, 오로지 책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읽는 비용
책을 읽게 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비용이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 시간의 비용, 돈의 비용이다. 비용은 기회비용의 종말을 의미한다. 기회비용은 아직 선택하지 않았을 때를 말한다. 무엇인가 선택을 한다면 기회는 사라지고, 비용만 남는다. 책을 읽기를 선택하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책을 읽기 위해서 시간의 비용이 둘 뿐 아니라 물질적인 비용 또한 감당해야 한다.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면 비용은 줄어들지만 가치는 낮아진다.
책 읽기는 자신을 갉아 먹는 행위이자, 자신을 채우는 행위다. 돈과 시간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갉아 먹는 행위’이고,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살아가는 한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채우는 행위’이다.
접점 또는 충돌
책은 누군가의 생각을 적은 것이다. 독자는 그 생각과 만나고, 충돌한다. 생각의 충돌인 동시에 공유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살아간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나를 만나는 동시에, 나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와 생각이 같다면 나의 생각은 더 단단해지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나의 생각은 교정되든지 반대하게 된다. 부디 교정 되기를 바라며.
문명은 항상 생각과 생각이 만나는 지점에서 꽃을 피웠다. 도시가 발달하는 이유는 수많은 다른 개인이 만나기 때문이다. 그곳은 접점이자 충돌이다. 만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은 정체 된다. 독서는 거대한 바다처럼 수많은 생각의 강을 만나게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문명을 보면 대개가 강을 끼고 있었고,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는 접점이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강과 다른 문명은 다르나 같은 맥락이다. 서로 다른 개인이 같은 목적으로 만나 그곳에서 교류함으로 문명을 발전해 나간다. 문명이나 나라가 쇠퇴하는 시기를 보면 자신들을 교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
쾌락적 독서
나는 모든 독서가 쾌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계발서이든 소설이든 상관 없이 최종 목적은 쾌락이다. 책을 수단화하든 책이 목적이든 상관 없다. 결국 ‘쾌락’이다. 책을 읽고 기분이 좋다면 이 역시 쾌락이고, 책을 통해 돈 버는 법, 건강해지는 법을 배워 목적을 달성했다면 이 역시 쾌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책을 결국 쾌락이 목적이다.
사람은 고통을 주는 것을 회피한다. 아픈 것을 싫어한다. 독서를 통해 고통을 경험한다면 독서는 결코 지속되지 못한다. 책을 읽고 도움을 얻지 못한다면 책은 더 이상 읽히기 힘들 것이다.
나를 읽는 책 읽기
책 읽기는 결국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미래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동의하는 무엇을 찾는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동의 또는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라. 그들의 분야는 대부분 정해져 있다. 누군가는 소설만을 고집하고, 누군가는 수필이나 일기 등을 읽고 싶어한다. 누군가는 주구장천 자기계발서만 읽는다. 자신들의 책 읽기가 최고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책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유야 어떻든 책은 자신을 강화하고, 비전을 제시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해박해 지기 마련이다. 소설이든 경제서는 상관 없다. 누군가는 문학에 정통하고, 누군가는 수필에 정통하고, 누군가는 역사에 정통하다.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그 분야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탓하지 마라. ‘그 책’을 선택한 것은 나고, 읽은 것도 나다. 지금의 나도 과거의 내가 만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미래를 읽는다.